이직 실패한 마케터의 퇴사 후 회고법 📝

4번째 회사로 이직한 후 한 달 만에 깨달았어요. '아 이 회사와 나는 잘 맞지 않구나.' 퇴사를 결정짓는데 구심점이 되었던 저의 퇴사 회고 인터뷰를 공유해요.
이직 실패한 마케터의 퇴사 후 회고법 📝

퇴사를 고민 중이라면 필요한 회고

‘아, 이 회사는 나와 정말 안 맞는구나.’ 4번째 회사로 이직 후 한 달 만에 깨달았습니다. 계속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이직 과정 자체도 힘들뿐더러 이제 막 새로운 곳에 적응을 시작했는데 또다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용기를 내어 두 달 만에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가능하게 했던 것 왜 이곳이 나와 안 맞는지 이성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회고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퇴사를 고민 중이라면 '왜 여기를 떠나고 싶은 걸까?', '무엇이 나랑 안 맞는 걸까?'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되죠. 저 또한 그 타임라인에 있었던 사람이기에 많이 공감됩니다.

감정적으로 말고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일잘러 문구점의 내오미와 회의를 하다가, 그녀가 공유해 준 '파타고니아의 퇴사 인터뷰'를 보게 되었어요. 파타고니아는 해당 퇴사 인터뷰를 통해 안 그래도 낮은 이직률을 더욱더 낮췄다고 하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 관련 기사 : 입사 때 처럼 ‘퇴사 인터뷰’ 하는 파타고니아

'퇴사에 대해 감정적으로 말고 이성적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차근차근 짚어보면서 나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하여, 파타고니아의 퇴사 인터뷰를 바탕으로 저 또한 퇴사 회고를 진행했고 결국 다음 스텝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구심점이 되었어요.


Q1. 그 회사에 왜 지원했나요?

"자기 제품력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회사여서요."

솔직히 말하면 묻지마 지원 맞습니다. 7년차인 저도 빨리 이직해야 한다는 마음이 급급했기에 ‘콘텐츠 매니저’, ‘콘텐츠 마케터’를 뽑는 회사들에 묻지마 지원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B2B, SasS라는 생소한 업계였는데, 말 그대로 산업과 비즈니스는 중요치 않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무엇을 사고 파는냐보다, 내가 하는 일인 ‘마케팅’만 할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다만, 면접 과정에서 CEO가 보여준 비전과 회사를 운영하는 철학에 큰 공감을 했고, 멋있었습니다. 생소하고 모르는 업계지만 사전 인터뷰, 1차 면접, 최종 면접을 거치면서 ‘아 이곳에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점점 커졌던 것 같아요.

많은 스타트업의 경우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 없이 투자금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은데 해당 회사는 실제로 돈을 벌고 있었고, 자기 제품력을 갖춘 회사였어요. 이전 조직에서 '자체 상품력이 없는 중개 플랫폼'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곳에서 일하면 최소한 굶어죽지 않겠다, 성장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죠.


Q2. 그 회사에서 기대했던 건 무엇인가요?

"콘텐츠로 비즈니스 성장을 이끌고 싶었어요."

직무적으로도 '콘텐츠 매니저'는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회사의 제품과 브랜드를 다양한 채널에서 매력적인 콘텐츠를 통해 타깃 고객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고, 해당 콘텐츠로 신규 고객들을 많이 데려오고 싶었어요.

앱, 웹 커머스 업계에서 콘텐츠를 중심으로 성장을 이끌었고 매거진 회사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기에 자신도 있었었죠. 한 마디로, 브랜드의 콘텐츠를 총망라하는 일을 하며 성장을 이끌고 싶었던 것 같아요. 면접 당시, 회사는 ‘콘텐츠 매니저’라는 롤에 대한 기대와 역할이 분명했기, 확실한 서포트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Q3.그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실제 현장에 들어가 보니, 기대했던 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기존의 마케팅 히스토리를 파악하고 비즈니스 생태계를 살펴보니, ‘콘텐츠 매니저가 진짜 필요한가? 내 역할이 필요 없겠는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로서도 당혹스러웠습니다.

<당시 회사의 상황>

  • 작년 10월을 기점으로 신규 가입 고객, 매출 등의 지표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

  • 마케팅 현황을 찬찬히 훑어보니 이 업계는 '인플루언서들과 제휴를 통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고객 확보에 가장 효과적

  • 타깃 고객들은 ‘유튜브(영상)’를 통해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는 걸 선호함

이런 상황에서 마케팅적으로 2가지만 공략하면 될 것 같더라고요. 업계에서 콘텐츠를 잘 만들고 있는 인플루언서들과 제휴 마케팅 추진, 자체 유튜브 채널 콘텐츠를 빠르게 찍어내 고객들의 검색어에 우리 콘텐츠가 발견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죠.

저는 콘텐츠 매니저이긴 하지만 영상 PD는 아닙니다. 동시에 인플루언서 제휴 마케팅은 어느 회사 건 늘 필요에 따라 해왔던 업무이지만 이걸 주도적으로 하고 싶진 않았어요. 하지만 이곳에선 그게 가장 중요한 마케팅이였기에 하루 종일 인플루언서를 찾고 컨택하고, 제휴를 맺고 하는 일들이 주를 이뤘죠.

정작 제 강점과 역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기존에 진행했던 마케팅 방식에 따라 일하면 되더라고요. 콘텐츠 매니저에서 인플루언서 영업/제휴 마케팅으로 어느덧 직무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었죠. 그 상황을 인지하고부터 일에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 그래도 모르겠는 이 시장에서 직무마저 바뀌어버리니 더 재미가 없어진 거죠.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는 질문만 계속했어요. ‘어느 정도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마케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곳에서 일은 정말 재미없었던 것 같아요.

Q4. 동료들 및 리더들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마케터에 대해 존중하지 않은 문화는 힘들었어요."

그곳은 지금까지 다녀 본 조직 중에 가장 작은 회사였습니다. 그래서, 일의 역할과 범위들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초기 스타트업이기에 이런 혼란스러움은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참을 수 없었던 건 ‘마케터에 대해 (암묵적으로) 존중하지 않은 문화'였던 것 같아요.

이에 관련해 깜짝 놀랐던 일화가 있어요. 각 파트별로 3분기에 어떤 전략으로 운영할 것인지 논의하는 전사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이제 막 입사한 저는, 한 달 간 배우고 리서치한 것을 바탕으로 이렇게 하겠다고 공유를 했죠.

“지금 저런 것보다 당장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해서 임팩트 있는 거를 더 해야 하지 않겠냐."

회사의 상황과 그 동료가 저런 의견을 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선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인정했기에 임팩트있는 일을 하겠다고 말하며 인플루언서 제휴 쪽으로 업무를 하게 된 거에요.

제가 참을 수 없었던 건, 이제 막 입사한 마케터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전혀 없는 회의와 의사결정이었기 때문이었어요. 한달간 고심했던 전략은 수포로 돌아가고,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죠. 그렇다면, 최초부터 열린 자리에서, '우리 지금 이런 상황이다. 임팩트있게 이것부터 다같이 추진해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회의에서 참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고 '애초에 이 전략을 왜 짜게 했지? 나를 왜 뽑았지?' 하는 의구심이 생기게 된 거죠. 하지만 이게 이 조직이 일하는 방식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그 회의 이후로 저는 퇴사를 결심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매번 두서없이 전략이 뒤바뀌고, 무엇 하나 꾸준하게 할 수 없는 곳이라면 마케터로서 중심을 잡고 일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어요. 그리고, 이런 게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나는 이런 문화와는 맞지 않구나도 알게 되었죠.


Q5. 그 회사에서 경험과 일을 통해 향상된 전문성이나 배운 점이 있다면?

그때 당시에는 조금 화가 났었는데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나에 대해 깨달은 점’, ‘배운 점’이 훨씬 더 많더라고요. 짧지만 강렬했던 이 회사에서 경험으로 앞으로 어떤 회사를 선택해야 하는지,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좀 더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어요.

첫 번째. 주도성을 갖고 일할 때 재미를 느낀다

저는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문제를 찾아갈 때 희열을 느껴요. 대게의 경우 스타트업은 많은 주도성과 책임을 지게 하는데, 이번 회사는 그게 부족했던 것 같아요. 알게 모르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죠. 어떻게 보면 이미 정해진 일을, 따라야 하는 환경에서부터 재미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싶어요.

두 번째. 나와 잘 맞는 산업, 카테고리가 있다

제가 큰 착각을 했던 게 ‘마케팅’만 할 수 있으면 어떤 산업, 분야도 상관이 없다였어요. 사실, 엄청 상관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1~3번 째 회사가 관심 분야에 있었기에 그걸 잘 몰랐던 것 같아요.

B2B, SaaS 업계로 넘어오면서 깜짝 놀랄 만큼 흥미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예술적, 문화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창의력, 아이디어, 시각적인 언어들로 소통하고 싶은 저와는 정반대에 있는 기술 조직이었습니다. 때문에 콘텐츠를 만들 때도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음 회사를 선택한다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산업군, 여행, 공간, 예술, 콘텐츠, 교육 등으로 폭넓게 도전해 보려고 해요.

세 번째. 주변이 어떻든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일적 자존감’이 없었다

‘마케터로서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이 마케팅이 맞을까?' 정답이 없는 마케팅 영역은 늘 불안하고 두려움이 따릅니다. 실패도 많이 해요. 그런데 이런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많은 테스트를 해보면서 밀고 나가는 뚝심도 정말 중요한 자질이더라고요.

제가 이 분야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주변 말에 흔들리고, 긴가민가하고, 마케터로서 자존감까지 무너지는 저를 보면서 '아 정말 나는 일적 자존감이 하나도 없구나.'를 알게 되었죠. 이건 저의 문제입니다. 이전의 성공 경험, 동료와 리더들로부터 인정받았던 순간은 많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더라고요. 스스로 이 부족한 ‘일적 자존감’을 채워야겠다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일적 자존감과 기초 체력 키우기

그래서, 이번 기회에 ‘마케터의 기초 체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어딘가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강한 태도와 마음을 갖고 싶거든요.

일잘러문구점,마케터에블린

마케터 에블린(Evelyn)
ill.marketer.evelyn@gmail.com
- 매거진 마케터 출신
- 커머스 웹, 앱을 거쳐 B2B SaaS 업계에 잠깐 발을 담갔다가 매운맛(?) 본 마케팅 노동자
- 언젠가 자유롭게 일하는 노마드의 삶을 꿈꾸며 오늘도 존버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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